(발간사)

전국야학 백서를 발간하며…

한국 야학의 역사가 일 세기를 향하고 있다. 야학의 태동은 19세기 후반 지배 계급의 위기와 민중들의 투쟁으로 변혁을 깃발을 올리고 있는 시기이다. 서구 제국주의의 거센 물결이 밀려왔고 일제의 강점으로 민중은 억압과 착취의 대상이었다 이에 야학은 반제, 반일의 기치를 들고 투쟁했었고, 해방을 지나, 암울했던 군부 독재 정권의 착취받는 민중 속에서 해방된 세상을 건설하고자 실천하고 싸웠다.

우리는 지난 시기 야학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시대에 의해 고립, 분산적이던 야학의 한계를 넘어 우리 운동의 새로운 모색을 시도하고자 했다. 전야협은 이러한 야학인들의 의지로 모아 97년 7월 광주에서 건설되었고, 전국야학백서를 제작하는 추동력으로 작용하였다.

야학 백서는 98년 2월 서경야협의 제의로 전야협에서 의결되었다. 야학의 현 실태를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드는 것이 야학 발전의 기반을 만드는 것이었다. 설문은 2월부터 6월까지 전국의 야학의 주소를 파악해나가면서 총 92개 야학에 설문지를 배포하였고, 66개의 야학의 설문을 수거하였다. 이중 61개의 야학을 전체 통계분석을 실시하였다.

본 백서는 야학인들의 참여와 전야협의 도움이 가장 크다. 또한 설문지를 배포, 수거를 담당한 서경야협 집행부에게도 말이다. 특히 통계를 담당한 이성건(고려대 통계학)에게 수고의 말을 드린다. 애초에 계획했던 것보다 많이 늦었고, 분량도 축소되었다. 각 야학의 백서는 되도록 전문 그대로 싣도록 노력하였다.

전국야학통계결과에 따른 분석은 어디까지나 야학에서의 나의 경험과 인식에 근거해서 분석하였다. 이것은 통계를 분석함에 있어 한계로 작용했음을 분명하다. 그래서 통계 결과에 대한 분석은 조직마다 새로이 해석할 필요가 있고, 통계결과에 대한 지나친 신뢰보다 보충자료로써의 활용을 권고한다

백서를 마무리하면서 야학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지금 백서에 있는 야학의 모습이 아닐까라는 반문도 하면서 말이다. 야학은 시대의 불완전성과 혼돈으로 올바른 상에 대한 근원적인 한계를 내포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에게 끊임없이 투쟁하고 싸우라고 요구하고 있다. . .

1998년 7월 10일

천성호